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압뒬하미트 2세 (문단 편집) == 비판 == 우선 압뒬하미트 2세를 변호하자면, 그가 [[파디샤]](황제)로 즉위한 시대의 오스만 제국은 이미 서구화 개혁을 마치고 근대화 되었지만 그 근대화로 인해 막대한 지출이 발생하고 오스만 제국은 외국으로부터 빌린 부채의 이자를 상환하느라 급급한 시절이었다. 당장 그의 아버지인 [[압뒬메지트 1세]]가 지어놓은 돌마바흐체 궁전 때문에 오스만 제국은 이미 파산을 선언한 경험이 있었다. 압뒬하미트 2세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자국 산업을 육성하려 했지만, 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돈도 결국 유럽 열강들에게서 꾸어야 했으며, 이는 오스만 제국이 산업화되면 될수록 오히려 빚의 수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렸다. 군사적으로 압뒬하미트 2세는 당장 직면한 적인 [[러시아 제국]]과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을 상대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최신식 무기를 도입했지만 이는 [[대한제국]]의 군대와 형식상으로는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.[* 물론 직접 비교는 어려운 것이, 대한제국은 이미 [[일본 제국]]이 맘만 먹으면 식민화할 수 있을 정도로 무너진 상태였던 반면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, 독일, 프랑스, 영국 등 유럽 열강과 일대일로 맞붙기엔 부족하지만 최소한 1차대전에 당당히 [[동맹국]]의 일원으로 참전할 만큼 '준' 강대국으로는 인정받고 있었으며, 독일이 참호전에 빠져 외부 지원을 할 여력이 없어지고 오스트리아가 삽질을 하는 사이에도 일단 자기 전선은 지키다가 전쟁 끝나기 직전에 그것도 무조건 항복이 아닌 휴전을 하였다. 대한제국과의 비교는 일단 전체적인 구도상 그랬다는 것이다.] 일단 돈이 엄청 깨지는 것도 그렇고, 여기에 보태서 여기저기서 좋다는 무기는 죄다 사 오는 바람에 무기마다 탄 규격이 맞질 않아 보급이 어려웠으며, 그 최신식 무기를 대량으로 구매하기라도 하면 좋은데, 당시 빚에 허덕이는 오스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많이도 구입할 수 없었다. 가령 유럽 국가 기준으로도 상당히 최신무기인 [[잠수함]]은 달랑 두척만 운영하고 있었다. 이 잠수함은 오스만 제국에 비하면 여전히 약소국인 그리스를 상대로 할 때에는 여러모로 활약을 했지만, 단 두척의 잠수함으로 전쟁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. 압뒬하미트 2세의 반민족주의 정책은 내부적으로도 민족주의의 유입으로 인해 분열직전에 다다른 제국을 통합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. 하지만 성과라도 있으면 좋은데, 이에 대해 내놓은 정책인 범이슬람주의는 그가 퇴위하던 1908년 당시까지만 해도 알바니아와 서아르메니아, 북부 이라크, 소 레바논, 푼토스를 비롯하여 기독교계 인구가 많던 지역이 상당수 남아있던 상태였었고, 또 의회의 절반이 비무슬림인 판국에 비무슬림은 아예 배제하고 무슬림만 데리고 간다는 소리나 다를 바 없었다. 그리고 그 믿던 무슬림들도 넓게 보면 아랍인과 튀르크인으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리던 판국이었고, 제국에서 그나마 쪽수가 있는 아랍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국 공용어를 아랍어로 하려는 정책은 튀르크인마저 반기를 들게 만들어 버렸다. 물론 정책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정책 자체는 그 이후에도 계속 추진됐는데, 그렇다 하더라도 제국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제국의 신민으로써 민족, 종교와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이상은 결국 [[튀르키예|튀르키예 공화국]]의 수립 이후에나 가능해졌고, 이를 위해서도 상당한 피를 보아야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